중학생이 바라봤던 대학생
Posted 2011/05/05 01:05, Filed under: 암거나갑자기 중학교 때
시험기간이면 독서실에 가서 밤샘 공부한다고
합법적으로(?) 외박을 할 때
만난 형이 생각나다.
2000원을 내고 독서실에 입장한 후 가장 좋은 구석자리를 확보한 후
당연히 친구들과 난 밖으로 나갔다.
바로 옆에 있는 오락실과 오락실 위층에 있는 당구장,
그리고 걸어서 10분거리의 노래방을 모두 가고
돌아오는 길에 떡볶이라도 사먹으면 시간은 10-11시가 된다.
이제 슬슬 돌아가서 포커 칠 시간이다.
생각해봐라.
중학생들이 치는 독서실 포커가 얼마나 시끄러울지 ㅎㅎ
우린 정말 공부하러 온 고등학생 형들한테 불려나가서 수없이 맞았고 쫓겨나기도 했지만,
그짓을 그만두진 못했다. 이유는 하나다, 재밌기 때문에.
우릴 겁주던 형 중에 기억나는 대학생 형이 한명 있다.
그형은 한창 열올리며 노름을 하고 있는 우리 자리에 와서 아주 쎄게 나왔다.
"이 X만한 새끼들 독서실에서 노름을 해? 다 따라나와!"
꽤 덩치도 좋았고 한다리 건너면 알만한 고삐리 형도 아니어서 우린 잔뜩 쫄아서 따라 나갔다.
나가서 맞기 좋게 일렬로 죽 서서 어딜 때릴까...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
왠걸 훈계랍시고 끝없이 이야기를 한다.
우린 그 형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었고 그 와중에 그 형은 훈계에서 슬슬 자기 이야기로 화제를 옮기기
시작했을 때, 난 깨달았다.
'아... 이 양반이 심심했구나....'
중학생들한테 왜 그런 이야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는데 대충 생각나는 건
자기가 대구에 있는 무슨 대학교 다니고,
집은 그 독서실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졌고,
왜 그 멀리까지 오느냐하면 부모님이 혹시나 찾아올 걱정이 없기 때문이고,
자기는 한달에 학원다닌다는 명목으로 100만원씩을 삥땅치고 있다...
정도이다.
난 대학생이 왜 학교를 안가고 학원비를 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
그 이야기는 귀에 들어지 않았다.
중요했던 건 기껏해야 참고서 산다고 3000원 삥땅치고 만원짜리 한두장이면
밤새도록 신나게 놀러다니던 우리에게
매달 100만원씩 삥땅친다 사실이었고 그런 면에서 그 형은 정말 대단했다.
우린 눈에 하트를 그려가며 그 형의 삥땅친 돈을 매달 어디에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,
내 기억에 그날은 돌아와서 조용히 잤던거 같다.
대학생한테 맞을까봐 무서워서 그냥 잤는지 그 형을 부러워 하느라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.
그 일 후로 그 형을 거의 매일이다 싶게 그 독서실 근처에서 봤다.
마주치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'끄덕' 하고 인사하고 지나가곤 했는데
항상 혼자였다. 그 형은. 그렇게 부자면서.
중학교 때 내가 생각했던 대학생은 딱 그모습이다.
삥땅 많이 칠 수 있고 매일 외박할 수 있는...외로운 사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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